프랑스의 세계적 석학 : 자크 아탈리 (Jacques Attali)
“백신 못구했다고? 한국 끔찍한 실수”
미테랑 10년 특별보좌관 지낸
세계적 석학 자크 아탈리 인터뷰
“백신 최소 10여종은 나와야”
“절망에 저항하십시오.” 코로나가 짓밟은 한 해 끝에, 프랑스 석학 자크 아탈리가 한국의 독자에 당부한 말이다. 아탈리는 15일 Mint 인터뷰에서 “코로나는 인류에게 ‘남을 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한다'는 이타주의의 가치를 상기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뭐라고? 한국이 코로나 백신을 구하지 못했다고? 직접 확인을 해보기 전엔 믿기 어려운 일이다. 사실이라면 끔찍한 실수(terrible mistake)다.”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석학 자크 아탈리(77)는 화상 인터뷰 때 한국이 코로나 백신을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당혹스러워했다. 그는 최근 발표한 책 ‘생명 경제로의 전환’에서 한국의 코로나 방역을 높게 평가했다. 한국 정부가 미리 대응 전략을 세우고 여론을 설득하면서 기업에 마스크와 진단 검사 키트 생산을 독려해 사회 전체가 잠정적인 무덤 속에 갇히는 국면을 피했다고 적었다. 그런 한국이 정작 백신을 구매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믿기 어려워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할퀸 2020년이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역대 최단 기간에 개발된 코로나 백신은 2021년을 이 먹구름 아래서 끌어낼까. 우리는 이 암흑 속에서 무엇을 얻고 잃었을까. 아탈리는 “코로나의 끝을 이야기하긴 이르다. 만약 우리가 코로나 팬데믹에서 충분히 배우지 않는다면, 미래에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다”라고 했다.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아탈리는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취임 후 10년간 특별보좌관을 지냈고, 2007년 집권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밑에서는 성장촉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1990년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설립을 주도하며, 1993년까지 초대 총재를 지내기도 했다. 현재는 1994년 설립한 컨설팅 회사 ‘아탈리&아소시에’ 대표를 맡고 있다. 최근엔 책 ‘생명 경제로의 전환’을 냈다. 그는 1998년 책 ‘21세기 사전'에서 인류가 2030년까지 팬데믹을 포함한 여러 재앙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우리 삶에 남긴 것과 앗아간 것은 무엇인가.
“팬데믹은 우리가 잊고 있던 많은 걸 알려주었다. 우선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결국 나에게 이익이 되다는 ‘이타주의(利他主義)’의 힘이다. 다른 하나는 다음 세대를 생각하고, 미래의 문제에 미리 대비하는 ‘생명 경제(economy of life)’로 시급히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줬다는 것이다. 건강, 교육, 위생같이 생명 그 자체와 연결된 분야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각인시켰다는 점이다. 앗아간 것은 ‘함께함'이 아닐까. 인간은 홀로 지낼 수 없는 존재인데, 팬데믹으로 서로에게서 분리되어 버리고 말았다. 큰 손실이다.”
–생명 경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미래에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생명’ 그 자체를 증진하기 위한 보건, 위생, 식량, 농업, 교육, 디지털 분배, 깨끗한 물, 지속 가능한 에너지 등이 광범위하게 포함된다. 이런 분야에 인류가 손을 놓고 있었다고 하긴 어렵지만, 충분히 매진하진 않았다. 대체로 국내총생산(GDP)의 40%가 이 범주 안에 들어 있었다. 미래엔 이를 70%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본다. 정부는 이런 분야를 정책의 우선순위로 세우고, 인센티브를 주어야 하고 시장 역시 생명 경제를 투자의 기준으로 설정해야 한다. 예컨대 ‘생명 경제와 관련한 분야가 아니면 투자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코로나의 끝은 결국 백신 아닌가. 한국은 백신을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
“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사실인가? 다시 확인을 해보겠지만 한국이 백신이 없는 상황이라면, 그건 실수다. 끔찍한 실수다. 물론 백신이 단칼에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뜻은 아니다. 백신 접종이 시작된 국가에서도 아무리 일러도 내년 여름까지는 코로나 영향 아래 있어야 할 것이다. 아마도 내년 내내일 수도 있다. 선진국은 좀 나을지 모르지만, 저개발국에선 백신을 맞게 하는 자체가 큰 도전일 수도 있다.”
–2021년에도 지금처럼 살아야 한다면 너무 암울하다.
“낙관·비관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이쯤으로 충분하다'고 할 때는 아니란 뜻이다. 백신 두세 개로 인류 전체를 커버하기는 어렵다. 백신 개발은 여러 회사에서 계속되어야 하고, 10여 종의 코로나 백신이 시중에 나와 어디에서건 백신을 구할 수 있어야 코로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매우 길 전망이어서, 2021년 우리는 ‘좌절에 저항하라'는 말을 반복해서 다짐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1월 1일이 된다고 모든 게 새롭게 시작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낙담이 우리를 무너지게 해서는 안 되지 않는가.”
–코로나가 우리 사회에서 지워버려서,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도 있을까.
“인류는 예전보다 덜 이동하게 될 것 같다. 이렇게 온라인으로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법을 배워가고 있으니까. 꼭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출장을 자주 다녔었는데, 어떤 출장은 가치가 있었지만 정말 쓸모없는 출장도 적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시간을 버리는 대신 그 시간을 좀 더 생산적인 일에 쓸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다면 그다지 나쁜 일만은 아니라고 본다.”
자크 아탈리 "마스크로 대표되는 '합리적 이타주의'로 팬데믹 극복해야"
20년 前 전염병 대유행 경고한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
코로나 내년 말 상황 마무리
종식 지연 땐 '코로나와 공존'
잠재적 위협 항시 대비해야
프랑스가 배출한 세계적 석학인 자크 아탈리(77·사진)는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는 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이름이다. 그는 20여 년 전인 1999년 펴낸 《21세기 사전》을 통해 팬데믹(대유행)이 찾아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18년에 펴낸 《미래대예측》에선 분노가 부추긴 이기주의가 전염병을 빠르게 확산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예언은 현실이 됐다. 올초 전 세계로 퍼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지금까지 6200여만 명을 감염시켰고, 145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 피해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아탈리는 한경BP가 번역 출간한 신간 《생명경제로의 전환》에서 해법을 제시한다. 아탈리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마스크로 대표되는 ‘합리적 이타주의’야말로 팬데믹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이타주의에 기반한 생명경제로 전환하는 것이야말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는 해법이라고 제시했다.
▷20여 년 전 예측한 팬데믹이 현실이 됐습니다.
“예측이 틀릴 때도 많습니다. 다만 과거 인류 역사에서 찾아왔던 전염병의 확산 정도와 트렌드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많은 전문가와 대화도 했고요. 그 결과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이 찾아올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틀리기를 원했지만 불행히도 현실이 됐습니다.”
▷팬데믹이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요.
“내년 말에 상황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 전에 끝난다면 인류에게 행운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코로나19에 적응해야 합니다. 중요한 건 모든 잠재적인 위협에 항상 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서에서 한국을 방역 모범국가로 소개했습니다.
“한국은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현명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방역당국이 주도적으로 한 마스크 제작·배급, 진단키트 제작·검사, 접촉자 격리 등 세 가지에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과거 전염병(메르스) 사태를 겪은 뒤 철저히 대비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소프트 파워’도 커졌습니다.
“한국은 다른 나라처럼 외출을 통제하지도 않았고, 경제가 완전히 멈추지도 않았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선 방역 모범 국가입니다.”
▷개인정보 침해에 대한 우려도 나옵니다.
“국가 존립이 위태로운 팬데믹 시기엔 어려운 결정입니다. 집단 생존의 문제로 봐야 합니다.”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보건 및 사법당국에서만 결정할 문제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강제격리나 개인정보 침해에 대해 국민에게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의회가 결정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포괄적이고 일관성 있는 법치국가로 진화해야 합니다.”
▷유럽 등 다른 나라는 피해가 큽니다.
“한국이나 대만이 아니라 중국 모델을 따라간 것이 사태를 키웠습니다. 중국은 사태 초기 정보를 숨기고 전 세계에 거짓말을 일삼았습니다. 유럽 등 각국 정부는 국민에게도 투명하게 정보를 알리고 최대한 많은 마스크와 진단키트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마스크는 불필요하다는 말로 대중을 호도하고 느슨하게 대처하면서 피해가 커졌습니다. 스웨덴의 집단면역 실험도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선 여전히 마스크에 대한 거부감이 큽니다.
“마스크 거부야말로 이기주의의 결과물입니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이기주의를 불러왔고, 팬데믹을 키웠습니다. 혼자만 마스크를 쓴다고 안전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도 써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코로나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에 대한 열린 마음을 앞세운 이타주의가 해법입니다. 이타주의를 앞세운 국가와 국민만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이타적’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이를 ‘합리적 이타주의(rational altruism)’라고 부릅니다.”
▷이타주의가 국제사회에서 가능할까요. 코로나 백신 전쟁도 치열합니다.
“반드시 필요합니다. 기후문제를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것처럼 전염병도 혼자서는 정복할 수 없습니다. 코로나19 백신도 전 세계 인구가 보유하고 있지 않는 한 아무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모두를 위한 백신 조달에 국제사회가 노력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전 세계에서 인종차별도 기승을 부립니다.
“비상식적일 뿐 아니라 어리석은 일입니다. 다만 인종차별은 유럽에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영국과 프랑스뿐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다름을 두려워합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예측합니까.
“우리는 아무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시대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매우 위험한 일이죠. 결코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팬데믹이라는 재앙을 만들어 낸 과거와는 단절하고, 완전히 새로운 미래를 기획해야만 합니다.”
▷서구사회 중심의 역사가 바뀔까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시아는 코로나19와 상관없이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은 소프트 파워 등 많은 분야에서 아시아를 여전히 앞서고 있습니다. 중국도 과거 미국이나 영국처럼 초강대국이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저서에서 ‘중국 책임론’을 강하게 지적했습니다.
“국제사회는 중국에 코로나19와 관련한 더 많은 정보 제공을 요구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중국 전체주의 정권이 이런 정보를 국제사회에 제공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중국과 일부 동유럽 국가가 권력을 강화하는 것을 민주주의의 위기로 보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것은 독재정권입니다. 특히 중국의 전체주의 정권은 자국민과 전 세계에 진실을 숨기면서 사태를 키웠습니다.”
▷정치체제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인가요.
“독재는 전염병을 관리하는 최선의 방법이 아닙니다. 규제를 시행하려면 국민과 정보를 공유해야 합니다. 신뢰는 두려움보다 훨씬 효율적입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큰 정부’가 부활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는 단순한 ‘사건’ 이상의 것입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보건·교육·디지털·청정에너지 등에 장기적으로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계기가 돼야 합니다. 단순한 케인스식 고전경제학 논리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업의 국유화 등을 무작정 하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더 나은 세상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 위해 ‘생명경제(the economy of life)’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자크 아탈리는 누구
미테랑 대통령 고문·유럽부흥개발은행 총재 등 역임
자크 아탈리는 정치·경제·문화·역사를 아우르는 지식과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겸비한 세계 최고의 석학으로 불린다.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아탈리는 재기와 상상력, 추진력을 겸비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지식인”이라고 평가했다.
아탈리는 1943년 알제리에서 태어난 뒤 프랑스로 건너왔다. 파리공과대와 파리정치대에서 수학했고, 전문 관료 양성기관인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했다. 소르본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취임 이후 10여 년간 특별고문으로 근무했다. 당시 미테랑 대통령은 모든 현안에 대해 매일 아탈리의 조언을 들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미테랑 대통령의 요청으로 각국 정상과의 회담이나 국무회의 등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설립을 주도한 아탈리는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초대 총재를 지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재임 당시엔 정부 산하 성장촉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지금은 컨설팅 회사인 아탈리앤드아소시에(A&A)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21세기 사전》을 포함해 《어떻게 미래를 예측할 것인가》 《자크 아탈리의 긍정경제학》 《인류는 어떻게 진보하는가》 《미래의 물결》 등 50권 이상의 저서를 펴냈다. 2010년엔 교육부와 한국경제신문사 주최로 열린 ‘글로벌인재포럼 2010’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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