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재택·원격근무 확대로...화이트칼라 ‘긱 이코노미(Gig Economy)' 미국 증시 상승

“에어비앤비(airbnb)의 시가총액은 미국 ‘빅3’ 호텔 체인 매리엇·힐턴·하얏트를 합친 것보다 많다.”

빈 집과 빈공간을 빌려주는 ‘숙박 공유' 회사 에어비앤비 주가가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자마자 두 배로 오르자 포브스가 내놓은 평가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여행이 증발해버린 시기에, 상반기만 해도 이 회사의 상장은 당분간 어려우리라는 전망이 대세였다. 

에어비앤비의 주가는 첫날 공모가 대비 113% 오른 146달러로 치솟았고, 이후 한 주 동안 거침없이 더 상승해 지난 18일 157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숙박공유업체 에어비앤비의 나스닥 상장을 기념하는 광고가 이 회사 CEO 브라이언 체스키의 얼굴과 함께 맨해튼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에 떠있다. 에어비앤비는 올해 미 증시 사상 최대 규모인 35억 달러의 자본금을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 음식 배달 앱 도어대시(Doordash)가 상장했다. 역시 폭발적으로 주가가 올랐다. 상장 첫날 공모가(102달러) 대비 86% 폭등했다. 18일 기준 주가는 186달러, 시가총액은 33억7000만달러로 상승세가 잦아들지를 않는다. 도어대시의 시가총액은 북미 거대 외식 기업 도미노피자·파파존스·RBI(버거킹·파파이스 모회사)·던킨을 합친 것보다도 커졌다.

에어비앤비와 도어대시는 공통적으로 공유 경제, 그중 긱 이코노미(gig economy)라 불리는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이끌어가는 대표 기업들이다. 긱 이코노미는 한 회사에 소속돼 일하는 대신, 자신의 노동 시간이나 자산을 유연하게 활용해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경제 활동을 뜻한다. 운전자가 자신의 차에 승객을 태우고 다니는 승차 공유 서비스 ‘우버', 식당에 소속된 배달 직원이 아니라 원하는 시간에만 일하고 건당 수수료를 받도록 한 ‘도어대시’, 집이 비었을 때 빌려주고 돈을 받는 ‘에어비앤비’ 등이 모두 긱 이코노미에 포함된다.

코로나 확산 초기엔 공유 자체가 위생상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긱 이코노미의 몰락을 점치는 전문가가 많았다. 그러나 한 해가 마무리되는 시장에서 긱 이코노미는 현재 가장 주목받는 투자처로 부각되고 있다. 시장의 돈은 왜 긱 이코노미로 쏠릴까. 이들의 비약은 일시적 유행을 넘어 새로운 경제 시스템으로 더 확산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코로나가 저임금 단순노동뿐 아니라, 화이트칼라의 ‘긱 워커' 전환을 촉발하며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리라고 예상했다.

코로나로 얼룩진 한해, 방역의 마무리를 백신이 이끌었다면 시장의 ‘느낌표’는 긱 이코노미가 찍었다. 에어비앤비와 도어대시 주가가 상장 후 폭등하며 시장에 충격을 던졌다. 한 달 전엔 승차 공유 서비스의 대표 주자인 우버·리프트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다. 이 회사를 통해 일하는 운전자를 ‘직원’으로 볼 것인지를 두고 캘리포니아주(州) 주민 투표에서 유권자들이 우버 등의 손을 들어주자(‘운전자를 고용할 필요가 없다’) 주가가 크게 올랐다. 이 회사들은 발목에 걸려 있던 묵직한 규제의 부담을 잘라낸 후 주가가 강하게 반등했다.

에어비앤비의 ‘상장 자신감'은 3분기 ‘실적 서프라이즈’에서 비롯했다.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에어비앤비의 전망은 여름까지만 ‘붕괴’에 가까웠다. 상반기 순손실이 7억6000만달러였고, 직원은 25%를 내보냈다. 하지만 해외여행이 사라진 자리를 국내 여행객이 채우고, 에어비앤비가 강점을 지닌 ‘교외 주택 단기 임대’가 코로나 피난처 역할을 하면서 3분기 실적은 2억2190만달러 순이익으로 반등했다.

바다 건너 인도에선 19일 시장점유율 1위 음식 배달 앱 조마토가 6억6000만달러 신규 투자를 유치했다는 뉴스가 터졌다. 디핀데르 고얄 조마토 CEO는 자신의 트위터에 “인도 음식 배달 시장이 코로나 그림자로부터 빠르게 벗어나고 있다”고 썼다.

긱 이코노미를 통해 성장하는 기업 주식을 모은 미국 ETF(상장 지수 펀드) ‘SoFi 긱 이코노미 ETF(티커 GIGE)’는 연초 이후 수익률이 99%, 지난 3개월 수익률이 42%다. 나스닥 수익률(연초 이후 41%)보다 훨씬 높다. 글로벌 트렌드 인베스트먼트 톰 라이든 대표는 “긱 이코노미를 통해 소득을 얻는 이들을 보면 37%가 밀레니얼, 28%가 X세대로 젊은 세대의 참여가 높아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긱 이코노미 산업은 금융·농업·교통·교육·소매·건설 등으로 계속 확산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전문직 ‘긱 워커' 시대 열린다

올해 긱 이코노미의 반등은 코로나 때문에 대세로 자리 잡은 음식 배달의 확산이 이끈 것이 일차적으론 맞는다. 예컨대 도어대시는 팬데믹 덕분에 매출이 급증했다. 지난해엔 전체 매출이 8억8500만달러였는데, 올해는 3분기 매출만 8억7900만달러다. 미국·캐나다·호주에서 영업하는데 이용자 1800만명을 넘기면서 이 플랫폼을 통한 긱 워크로 돈을 버는 배달원이 100만명을 넘겼다. 한국도 비슷하다. 배달 대행 업체 바로고 소속 배달원은 지난해 1만2000명에서 올해 11월 2만7000명으로 두 배 넘는 수준으로 증가했다. 배달 앱 배달의민족을 인수한 독일 딜리버리히어로는 올해 3분기 주문 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의 곱절인 3억6170만건으로 늘며 주가가 연초 대비 69% 상승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긱 이코노미의 반등을 ‘배달 증가’의 틀로만 본다면 ‘큰 그림'을 놓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배달이나 승차 공유 종사자를 넘어, 전문직 등을 포함한 화이트칼라 직군의 대규모 긱 이코노미 편입이 예고된다고 보고 있다.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폴 오이어 교수는 “기업들은 코로나를 통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유연한 인력을 채용하는 장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업워크(Upwork, 미 프리랜서 플랫폼)’ 같은 온라인 플랫폼은 이런 기업의 고용 전환을 더 촉진하고 있다”고 했다. 세계경제포럼은 지난달 열린 ‘변화의 선구자들'이라는 포럼 발표문에서 “코로나 이전 긱 이코노미가 일자리를 찾는 이들의 ‘최후의 선택지'였다면, 이제는 능력 있는 개인이 앞다퉈 프리랜서 선언을 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앞으로 당신 회사의 임원이 ‘긱 워커’가 되지 말란 법도 없다”고 전망했다.

업워크의 애덤 오지맥 수석경제학자는 “업워크 인기 상위 직종은 개발자, 비즈니스 전문가 등 고숙련 근로자가 대다수”라며 “코로나 이후 고급 인력을 정규직으로 다시 복귀시키기 곤란한 기업들이 긱 워커 채용을 늘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지난 7월 업워크가 이용자 6001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34%가 3월 코로나 유행 이후 처음 업워크에 가입했다고 답했다. 코로나 특수로 업워크 매출은 전년 대비 23% 증가했다. 연초 대비 주가는 277% 올랐다. 또 다른 전문직 프리랜서 플랫폼 파이버(Fiverr)는 올해 주가 22.9달러로 출발해 209.29달러로 9배 넘게 상승했다.

한국도 숨고·크몽 등 전문직 프리랜서와 고용주를 연결하는 플랫폼이 빠르게 성장 중이다. ‘한국판 업워크' 숨고는 올해 디자인·개발 영역 서비스 요청 건수가 전년 대비 세 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박태희 숨고 마케팅 매니저는 “코로나 이후 유튜버 강의, 주식 강의 등 기존에 없던 전문가 카테고리가 250개 새로 생겼다”고 했다. 현재 숨고에 등록한 전문가는 50만명 정도인데, 숨고는 이 중 15만명 정도가 ‘투잡’이 아닌 ‘전업 긱 워커'로 추산하고 있다.

◇“과도한 비용에 수익 못 내” 거품 우려도

한편에선 긱 이코노미의 ‘거품’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에어비앤비와 도어대시의 상장 대박이 긱 이코노미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진 않는다”고 전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기업들의 매출은 늘고 있지만, 순이익을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Mint가 주요 긱 이코노미 기업 6곳의 올해 실적을 분석했더니, 올해 흑자를 보리라고 예상되는 기업은 미국의 공예품·소매품 판매 플랫폼인 에시(Etsy) 한 곳뿐이었다. 예컨대 도어대시는 올해 9월까지 주문량이 전년 대비 세 배로 늘었는데도 3분기까지 손실이 1억5000만달러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로빈후드(미국 주식 거래 플랫폼) 효과·가 주가를 띄웠지만 결국 중력이 작용(주가 하락)할 것이다”고 경고했다.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의 렌 셔먼 교수의 말이다. “도어대시는 식당에서 통상 지불해야 하는 식대보다 30% 싼 가격에 주문을 받고 있어요.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쓰는 겁니다. 건수가 늘어도 돈을 벌 수가 없는 건 당연합니다. 이번 상장으로 자금을 모았지만, 이후 다른 구성원에게 ‘열매'를 나눠줄 수 있을까요? 저는 매우 회의적입니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