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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레버리지ETN, 투자자 잠정손실 4000억

지난달 개인투자자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투기과열 현상이 벌어진 원유선물 레버리지ETN(상장지수증권)이 사실상 상장폐지 수순에 들어갔다.

레버리지ETN이 추종하는 원유선물 지표가치가 0에 가까이 수렴하면서 시가총액 약 4300억원 규모의 4개 레버리지ETN 증권이 휴지조각이 될 위기에 처했다. 투자자 잠정손실액은 4000억원 이상이 될 전망이다.

거래소가 투자자손실 위험을 경고하며 레버리지ETN 거래를 정지시킨 가운데 매매거래정지가 무기한으로 연장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표가치가 '0'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1일 괴리율이 적게는 수백~수천%로 치솟은 4개 레버리지ETN IIV(실시간 지표가치)는 100원대 아래로 떨어졌다. 이들 ETN은 △신한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 △ 미래에셋 레버리지 원유선물혼합 ETN(H) △삼성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 QV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 총 4개다.

거래소는 이날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기초자산인 WTI원유선물이 50% 이상 하락해 지표가치가 ‘0’원이 되면 투자금을 전액 손실할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신한·미래에셋 레버리지 ETN의 거래를 23일, 24일 양일간 정지한다고 밝혔다. 현재 거래가 정지된 삼성·QV(NH투자증권) 레버리지 ETN의 거래재개 시점은 별도로 공지한다고 말했다.

지표가치가 0이라는 말은 쉽게 말해 더 이상 증권으로서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원유선물 ETN은 추종하는 기초자산의 수익률을 ETN가격에 그대로 반영하도록 설계됐는데, 기준가인 지표가격이 0원을 찍을 경우 추후 유가가 오르더라도 원금이 전액 손실된다는 것이다.

현재 신한 레버리지ETN IIV 값은 63이다. 만약 유가가 단기간에 급반등을 해 현 유가보다 50%(레버리지는 100%) 폭등한다고 해도 IIV 값은 126(63의 2배)에 그친다. 현재 신한 ETN 가격은 650원으로 전혀 현재 유가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이 IIV 가격이 0원에 가까워질수록 사실상 거래가 의미가 없다는 의미다. IIV가 1로 떨어지게 되면 유가가 5일 연속 50% 폭등하더라도 △1 △2 △4 △8 △16에 그치게 된다. 극단적으로 현재 레버리지ETN 거래는 이미 가치를 상실한 가상의 기업을 두고 투자자들의 수급만으로 가격을 뻥튀기 하는 일과 비슷하다는 설명이다.

◇4000억 '휴지조각' 위기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2일 장마감 후 이들 ETN 4종목의 시가총액은 총 4344억7500만원, 21일 기준 지표가치금액은 1493억9345만원이다. 22일자 지표가치금액은 이르면 이날 저녁 집계될 예정이다.

여기서 시가총액은 투자자들이 4개 ETN을 매수해 갖고 있는 금액을, 지표가치금액은 실제 이들 ETN이 추종하는 원유선물 지표가격의 총합을 말한다. 4개 증권사(신한금융투자, 미래에셋대우, 삼성증권, NH투자증권)는 시점은 다르지만 각각 1만원에 레버리지ETN 증권을 상장해 거래해왔다. 이 ETN이 실제 추종하는 지표가치, 즉 원유선물 가치가 1500억원 남짓이라는 설명이다.

이 금액은 전날 기준 액수다. 22일에는 이 지표가치가 10분의1 넘게 하락했다. 전날부터 거래가 재개된 신한 레버리지ETN의 경우 900원대였던 IIV 가격이 22일 현재 63원까지 내려왔다. 10분의1로 떨어졌다고만 가정해도 1500억이었던 지표가치금액은 150억원으로 대폭 줄어들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4개 종목이 상장폐지 또는 조기청산 절차에 돌입한다고 가정시 지표가치금액만을 돌려받게 된다. 결국 현 IIV 값을 통해 지표가치금액을 수정하면 투자자들은 전체 시가총액에서 지표가치금액을 제외한 4000억원 이상(4344억7500만원 - 약 150억원) 손실을 보게 되는 것이다.

삼성증권이 22일 홈페이지에 올린 투자유의 공지문

◇어떻게 하다 이렇게까지

처음에는 괴리율이 문제였다. 지난 3월에는 유가반등을 기대한 투자자들이 레버리지ETN에 돈을 쏟아부으며 LP들의 가격조정 물량을 싹쓸이하자 괴리율이 벌어졌다.

괴리율은 ETN의 시장가격과 지표가치(IIV)의 차이를 나타내는 비율로 양수(+)인 경우에는 시장가격이 ETN의 본질적 가치인 지표가치보다 고평가된 것을 의미한다. 과대평가된 상품일수록 급격한 가격 하락 가능성도 높아진다.

추가로 가격조정을 위한 ETN물량을 수 천만주를 상장해도 며칠만에 개인투자자들이 이를 모두 사들이면서 도저히 괴리율을 잡을 수 없게 됐다. 즉 가격조정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온전히 투자자들의 수급으로만 가격이 결정돼 괴리율이 올라갔다는 뜻이다.

◇유가가 떨어지니 답이 없네

이때까지만 해도 실제 IIV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매수물량이 문제였지, IIV 가격 자체가 폭락하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문제는 5월물 롤오버 시점에서 불거졌다. 지난 21일 5월물 WTI 만기시점이 가까워오자 공급과잉이 극대화되면서 유가는 마이너스(-) 37달러까지 곤두박질 쳤다. 이 영향으로 22일 IIV도 10분의 1 토막이 나버린 것이다.

ETN 가격과 원유선물 지표가격을 일치시키기 위해 인위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해 가격을 조정하는 LP(유동성공급자) 증권사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LP물량은 현 IIV값의 ±6% 내외로 주문을 낼 수 있게 정해져있다. 신한 레버리지ETN의 경우 IIV값이 60대를 맴돌고 있어 6%를 적용해도 63~64원선의 매도주문을 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 주문가격은 ETN가격의 하한선을 크게 밑돈다. 신한 레버리지ETN은 22일 650원에 거래를 마쳤는데 하한가 60%를 적용해도 365원이다. LP가 가격조정을 위한 주문을 내고 싶어도 하한가에 막혀 낼 수 없게 된 것이다.

◇숱한 투자경고, 거래정지에도 막을 수 없던 불나방들

이번 레버리지ETN의 투자과열에 대해 증권업계는 물론이고 거래소도 혀를 내두른다. 최근 몇 주 동안 수차례 투자경고와 괴리율 폭등을 경고하며 손실위험을 고지했지만 늘어난 매수세가 도무지 가라앉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한 대형증권사 관계자는 "저희도 너무 답답하다. 얼마나 이게 위험한지 고지를 계속 했고 수 천만주를 추가상장해도 가격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며 "이렇게 투자자들이 몰려들면 저희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말했다.

원유선물을 담은 ETF(상장지수펀드)에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위험이 커지면서 자산운용사들은 관련 유의사항을 각 판매증권사에 전달하고 고객들에게 고지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한 대형증권사 강남지역 PB팀장은 "최근 고객들 문의는 많이 있었는데 투기성이 너무 높아 투자하지 말라고 말렸다. 유가가 너무 낮게 내려가서 쉽게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는데, 시장을 너무 심플하게 봤다. 선물을 이용하고 롤오버 코스트를 무시했다가 큰 위험에 처한 것"이라고 밝혔다.

 

상장폐지 위기 내몰린 원유 ETN…2兆 베팅한 개미

레버리지 ETN, 유가 전일대비 50% 하락 땐 상장폐지

WTI 5월물 값 마이너스 이어
6월물마저 급락하자 시장 '공포'
지표가치-시장가 괴리 너무 커져
ETN 유동성 공급하는 증권사
"수습할 수 없는 지경" 두 손 들어

지난 21일 서부텍사스원유(WTI) 6월 인도분이 43% 폭락했다. 장중에는 하락률이 60%를 넘기도 했다. 22일 아침 눈을 뜬 원유 레버리지 상장지수증권(ETN) 투자자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만일 종가가 7%포인트 더 하락했다면 투자자산을 모두 날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국내에 상장된 WTI 원유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모든 레버리지 상품은 유가가 50% 하락하면 상장폐지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유가 변동성이 극심해지면서 관련 상품 투자자의 전액 손실과 상장폐지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원유 상품에만 7조원 투자한 개미들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원유 관련 ETN ETF 등 상장지수상품(ETP)은 총 18개다. 브렌트유 가격을 따라가는 2개 상품을 제외하면 모두 WTI 선물을 기초자산으로 삼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산유국 간 감산 합의 무산으로 국제 유가가 단기간에 급락하자 개인투자자가 이 상품으로 몰렸다. 올 들어 개인은 국내에서 원유 ETP 2조3712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원유 관련 인덱스 펀드로 유입된 설정액도 4조7446억원에 달했다. 유가 상승에 베팅한 자금만 7조원대에 이르는 셈이다.

지난 20일 WTI 5월물 가격이 사상 처음 마이너스를 기록했을 때도 전문가들은 크게 우려하지 않았다. 21일 만기를 하루 앞두고 일시적으로 변동성이 확대된 결과라는 설명이 나왔다. 국내 ETN 상품들은 이미 6월물로 기초자산을 롤오버(근월물 만기가 오기 전에 원월물로 교체하는 것)한 터라 가격에 큰 타격이 없었다.

○만기 많이 남은 6월물 하락 우려

하지만 다음달 19일이 만기인 6월물마저 급락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부분 손실을 넘어 상품 청산 및 상장폐지 가능성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ETP 상품은 기초자산(원유)의 수익률을 따라가기 위해 관련 선물 등에 투자한다. 매일 대금을 지불하며 자산을 유지한다. 하지만 지표가치가 0 아래(유가 마이너스)로 떨어지면 자산가치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상장이 어려운 상태를 말한다.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될 가능성은 적지 않다. WTI 6월물도 마이너스로 떨어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롤오버 기간(5월 7~14일) 이전에 0 아래로 떨어지면 이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모든 ETN ETF의 지표가치는 0이 돼 청산 및 상장폐지 대상이 된다. 기초자산 하루 가격 변동을 두 배로 추적하는 레버리지 상품은 50%만 떨어져도 상장폐지가 불가피하다. 유가가 10달러라고 가정하면 거래가 5달러로 끝나면 모든 레버리지 ETN이 거래 정지되고 청산 절차를 밟는다는 얘기다. 유가와 반대로 움직이는 인버스 상품도 마찬가지다. 유가가 15달러가 되면 유가 하락에 베팅하는 인버스 레버리지 ETN도 투자금 전액을 잃는다.

○괴리율 축소도 어려워

증권사가 유동성을 공급해 괴리율을 줄이는 것도 쉽지 않다. 평소 증권사는 ETN의 시장가격을 지표가치와 맞추는 유동성공급자(LP) 역할을 한다. 원유선물 1만원어치를 담고 있는 ETN이 이보다 비싸게 거래되고 있으면 공급량을 늘려 주가를 떨어뜨리고, 싸게 거래되면 매수해 주가를 올린다. 시장가격이 1만원 인근에서 형성되도록 한다.

하지만 최근 괴리율을 조절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거래소 규정에 따르면 증권사는 지표가치(원유 선물가)의 ±6% 내에서만 ETN 호가를 낼 수 있다. 동시에 모든 상장 종목은 시장가격의 ±30% 범위 내(레버리지 상품은 ±60%)에서 호가를 낼 수 있다. 지표가치가 너무 떨어지고 시장가격이 너무 높아져 두 범위의 접점이 없어지면 LP의 호가 제출이 불가능하다.

22일 신한금융투자는 이런 문제 때문에 ETN 신규 물량을 시장에 풀지 못했다. 지난 21일에는 1조300억원어치(액면가 기준)를 공급했으나 유가 폭락으로 괴리율이 더 벌어져 아예 손을 놓았다. 삼성증권도 최대 2조원의 신규 물량을 상장할 수 있었지만 보류했다.

개인투자자 손실이 우려되는 상황이 다가오자 금융당국은 투자자 말리기에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9일 레버리지 원유선물 ETN에 대해 가장 높은 등급인 ‘위험’ 소비자경보를 발령했다. 이는 금감원이 소비자경보 제도를 도입한 2012년 이후 처음이다. 한국거래소는 24일까지 WTI 원유선물을 기초자산으로 한 ETN 2종목에 대해 거래를 정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 상장지수증권(ETN)

원자재나 주가지수 등 기초자산의 가격 변동에 따라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설계한 채권 형태의 상품. 거래소에 상장돼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다. 상장지수펀드(ETF)와 비슷하지만 자산운용사가 아니라 증권사가 발행한다. ETF ETN을 통틀어 상장지수상품(ETP)이라고 부른다.

 

"진짜 큰일났다 vs 버티면 된다"…원유ETN 투자자 '멘붕'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원유 수요 급감으로 국제유가가 폭락한 가운데 국내 정유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22일 오후 울산시 남구 SK에너지 원유 저장탱크의 '부유식 지붕'이 탱크 상단까지 올라와 있다. 부유식 지붕은 탱크 내 원유 저장량에 맞게 위아래 자동으로 움직이게 된다. 

지난달 투기 광풍이 벌어지며 거래량이 폭증한 원유선물 레버리지 ETN(상장지수증권) 수천 억 원이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다는 소식에 투자자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22일 원유ETN 종목을 토론하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거래정지 때문에 돈을 뺄 수 없다"며 '나가게 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이들과 '아직 기회는 남았다'고 끝까지 버티면 승리할 것이라는 이들의 끝장토론이 이어졌다.

한 투자자는 "자신들에게 유리할 때는 투자를 권유하고, 국제유가가 급락해 조금만 반등해 자신들에게 불리해지니 거래정지 시킨다고? 탈출기회는 줘야 되는 게 아니냐"고 성토했다.

지난 8일 주당 3200원(현재 2085원, 거래정지 중)에 삼성 레버리지ETN을 매수했다는 한 투자자는 "(유가가) 싸다고 생각해 안심하고 버티고 있었다. 거래정지가 풀리면 맞을 건 맞고 유가가 다시 올라갈 때 따라 올라가면 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자신을 레버리지ETN에서 8000만원 손실을 봤다고 밝힌 한 투자자는 "다른 곳에서 만회하면 된다. 모두 힘내자"고 격려하기도 했다.

반면 종목토론방에 한 투자자는 "솔직히 레버리지 대박 날 것 같으니까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남이 돈을 따면 배 아픈 거지"라고 했다. 또 다른 투자자도 "한 달만 거래정지 하면 된다. 그 안에 유가는 정상화될 것"이라며 "너무 조급할 것 없다"고 말했다.

한편 레버리지ETN이 추종하는 원유선물 지표가치가 0에 가까이 수렴하면서 시가총액 약 4300억원 규모의 4개 레버리지ETN 증권이 휴지 조각이 될 위기에 처했다. 투자자 잠정손실액은 4000억원 이상이 될 전망이다.

이들 ETN은 △신한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 △ 미래에셋 레버리지 원유선물혼합 ETN(H) △삼성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 QV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 총 4개다.

거래소가 투자자 손실 위험을 경고하며 레버리지ETN 거래를 정지시킨 가운데 매매거래정지가 무기한으로 연장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63원짜리 ETN이 650원에 거래...폭탄 껴안은 '원유개미'들

[원유파생상품 휴지조각 되나]
국제유가 50% 이상 떨어지면
4개 레버리지 종목 전액 손실
유동성 공급 증권사도 '포기'
자진 상폐 등 제도 정비 필요

21일(현지시간) 미국 오클라호마주 쿠싱의 원유 저장탱크들이 대부분 가득 채워져 있다. 아직 비어 있는 탱크들도 이미 예약이 완료돼 저장 공간이 부족한 원유의 추가 가격 하락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제공=로이터

국제유가의 유례없는 급락세 속에서 원유상품에 대거 투자한 개인투자자들의 손실이 불가피해졌다. 그동안 상장지수증권(ETN)과 상장지수펀드(ETF)가 실제 가치 대비 수십~수백%가량 고평가된 가격에도 묻지 마 매매가 이뤄졌다. 특히 레버리지 상품의 경우 국제유가가 50% 이상 떨어지면 전액 손실이 발생할 우려가 큰 상황이다.

22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6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이날 새벽 현지에서 43.4%(8.86달러) 하락한 배럴당 11.57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에는 전일 종가 대비 68% 떨어지기도 했다. 국내 상장돼 있는 2배짜리 유가 레버리지 ETN 상품의 경우 국제선물 가격이 -50%를 넘어가는 순간 100% 손실로 청산된다. 그나마 종가에 반등하며 휴지 조각을 면했지만 언제든지 유가가 급락할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이같이 투기성이 강한 유가 상품임에도 이날 개인투자자들의 매수세는 뜨거웠다. 게다가 실제 가치보다 고평가된 가격에 ‘묻지 마’ 매수 광풍으로까지 이어졌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신한레버리지 WTI원유선물 ETN은 전일보다 28.18% 하락한 650원에 거래를 마쳤다. 그러나 이 가격은 정상가치를 고려하면 9배나 비싼 터무니없는 가격이다. 이 상품이 기초자산으로 삼고 있는 원유선물을 토대로 계산한 정당한 가치는 주당 63원22전에 불과하다. 실제가치에서 매매가격을 뺀 ‘괴리율’은 그동안 50~60%선에서 고공행진을 해왔지만 이날 극단으로 치달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이성을 잃은 듯하다”고 말할 정도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래에셋레버리지원유선물혼합ETN도 전일 대비 35.2% 하락한 1,600원에 거래를 마쳤으나 괴리율은 231%에 달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482원으로 장을 마쳤어야 하는 상품이다.

원유 ETF의 경우는 가격제한폭 때문에 실제 가치보다 높게 매매가격이 형성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KODEX WTI원유선물(H)은 가격 제한폭인 30%까지 떨어졌으나 이는 유가 하락 폭인 약 40%에 못 미치는 금액이다. 이에 종가 기준 괴리율이 32.24%로 벌어졌고 한국거래소는 23일부터 이 종목에 대해 단일가 매매를 적용하기로 했다.

개인 투자자들의 투기성 매수세가 이어지면서 시장조성자들인 증권사들은 사실상 손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거래소가 ‘문을 닫는’ 조치를 취했다. 신한금융투자는 전일만 해도 1억주 이상의 자체 보유 물량을 쏟아내며 괴리율 줄이기에 안간힘을 썼으나 이날은 백기를 들었다. 업계 관계자는 “해당 ETN은 1일 거래량이 1억주가 넘는데 현재 신한금투가 보유한 물량은 9,700만주밖에 안 된다”며 “가격 정상화를 위해 손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거래소는 신한레버리지 WTI원유선물 ETN(H)과 미래에셋 레버리지 원유선물혼합 ETN(H)을 23~24일 거래 정지시키고 오는 27일 단일가매매 방식으로 거래를 재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미 삼성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 QV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은 거래가 정지된 상태다. 이 4개 종목의 시가총액은 22일 기준으로 4,345억원이다. 거래가 정지된 상황에서 국제 유가가 50% 이상 떨어지면 이 상품들은 휴지 조각이 된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당국과 거래소·운용사 관계자들은 투자자들에게 연일 투자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10달러선인 국제유가가 5달러로 가는 일은 어렵지 않다”며 “한번 전액 손실이 발생하면 영원히 복구될 수 없다는 점을 누차 고지하는데도 도통 투자자들에게 먹히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참에 혼탁한 원유 상품 시장에 대한 제도 정비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해외처럼 운용사나 증권사들이 자체적으로 상장폐지(조기상환)를 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외에서는 최근 운용사들이 유가 ETF 등을 자체적으로 상장폐지를 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국내에는 관련 규정이 전무하다. 업계 관계자는 “개인 투자자들의 무분별한 투자를 방조하는 ‘미필적 고의’가 벌어지지 않게끔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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