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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투·영끌'에 가계부채 126조 급증...빚 내용·속도 모두 나빠졌다.

가계 빚 1700조 돌파...증가율도 7.9%로 가팔라져
빚 대부분 투자 자산에 흘러가...소비 촉진 효과 미미
실물 경기 바닥 속 '빚 잔치'...경제 뇌관 될라 불안

코로나19가 휩쓸고간 지난해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126조원 가까이 증가해 역대 두 번째로 높았다.


코로나19 여파로 생활고를 겪는 가계가 늘고 부동산 '영끌 대출(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에 ‘빚투(빚내서 주식 투자)'까지 급증하면서 지난해 우리나라 가계 빚 증가액이 전년 대비 2배 가까이 늘어나 사상 처음으로 1,700조원을 넘어섰다.

가계 빚 대부분이 경제 활력을 이끌 수 있는 소비와 큰 관련이 없는 데다가, 빚 규모도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빚 자체의 내용뿐 아니라 증가 속도도 악화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특히 가계부채 규모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규모에 육박하는 등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확대돼, 향후 우리경제 전체를 흔들 수 있는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가계부채 126조 급증... 전년比 증가폭 2배

가계신용 추이.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0년 4분기 가계신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가계신용(부채) 잔액은 1,726조1,000억원으로 전년도 말에 비해 125조8,000억원 늘었다. 126조원에 달하는 연간 증가폭은 부동산 대출 규제를 대폭 완화해 가계부채가 크게 늘었던 2016년(139조4,000억원) 이후 최대 액수이며, 역대 두 번째다.

2019년 가계부채 연간 증가액이 63조6,000억원에 그쳤던 것을 고려하면 1년 만에 빚 증가 규모가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규모도 그렇지만, 증가 속도가 너무 빨라지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당국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강력한 '가계 대출 옥죄기'에 들어갔지만, 가계대출 증가율은 오히려 4% 안팎에서 7% 후반까지 치솟았다.

송재창 한은 금융통계팀장은 "지난해 4분기 가계부채 연간 증가율(7.9%)은 2017년 4분기 이후 최대치"라며 "증가 규모 자체도 2003년 통계편제 이후 역대 세 번째로 클 정도로 가계부채가 빠른 속도로 불어났다"고 분석했다.

가계 빚 내용 자체도 좋지 않다. 가계 대출 대부분이 위험 자산인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에 사용되면서 경제 선순환을 이끌 수 있는 소비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실제 가계신용은 금융기관에서 직접 대출한 '가계대출'과 자동차 할부금이나 신용카드 이용액 등 외상 대금을 의미하는 '판매신용'으로 나뉘는데, 지난해는 판매신용이 2,0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는 전년도(5조6,000억원)에 비하면 30분의 1에 불과한 규모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비 습관이 신용카드에서 온라인 중심으로 늘어난 영향도 있겠지만, 지난해 해외여행이 급감하고 오프라인 중심 소비가 줄면서 판매신용 증가액이 급감한 것으로 보인다"며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자산으로 부채가 집중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구조"라고 말했다.

영끌·빚투 합작... 제2은행권·증권사에서도 빚냈다

이달 초 한 시민이 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붙어 있는 매물 정보를 보고 있다. 재건축 규제 완화 기대감과 전셋값 상승 등의 영향으로 지난달 서울 아파트값이 7개월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천정부지로 치솟은 부동산 가격과 하반기부터 본격화한 주식투자 열풍은 가계빚 폭증의 1등 공신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생활자금 수요도 부채 증가에 한몫했다. 실제로 지난해 전체 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67조8,000억원, 신용대출을 포함한 기타대출 증가액은 57조8,000억원을 기록하며 각각 전년도 대비 2~3배나 규모가 커졌다.

특히 1분기 1조9,000억원에 불과했던 기타대출의 경우 본격적으로 '빚투(빚내서 투자)'가 시작된 3분기부터 큰 폭으로 늘어나 4분기엔 24조2,000억원까지 몸집을 키웠다. 가계부채 총량 관리를 위해 금융당국이 11월 말부터 대출 규제 고삐를 세게 쥐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분기 만에 2019년 연간 증가액 규모를 넘어선 것이다.

송 팀장은 "11월 가계 신용대출에 대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추가 규제 등의 발표가 있었지만, 규제가 어느 정도 효과를 보일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제2금융권(비은행예금취급기관)과 증권사 대출이 유난히 큰 폭으로 늘어난 것도 주식시장을 향한 '빚투'와 '영끌'의 영향으로 보인다. 지난해 저축은행과 새마을금고 등을 포함한 비은행예금취급기관에선 신용대출이 11조6,000억원이나 늘어나면서 전년의 2배 가까이 증가폭을 키웠다.

기타금융기관 중에서는 증권회사가 포함된 기타금융중개회사의 대출액이 가장 크게 늘었다. 특히 개인들이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회사에서 빌리는 신용공여액이 2분기 이후 비중을 키우며 해당 항목 대출 증가액이 전년도 3조9,000억원에서 지난해 26조3,000억원으로 눈에 띄게 늘어났다.

실물경제는 여전히 바닥인데... 금리 오르면 어쩌나

지난달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인근 거리의 한 상점에 전기 사용 계약 해지 안내문과 미납액 고지서가 부착돼 있다. 지난해 민간소비는 서비스(음식숙박·운수)와 재화(음식료품 등) 소비가 모두 위축돼 전체적으로 1.7% 감소했다. 

가계부채는 매해 증가해왔지만,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상황 속에서 벌인 지난해의 '빚잔치'는 부실 위험이 유난히 크다.

소비, 고용 지표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등 실물 경기가 바닥을 기고 있는 상황에서 자산 가격 거품은 커져만 가고, 시장금리 인상 부담까지 떠안게 됐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갚기 어려운 빚'이 과도하게 늘어난 셈이다.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가계부채 증가규모 자체는 2016년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그때와의 차이점은 아직 실물경기 회복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아직은 금리가 낮아 부채 수준이 금융권에 부담이 될 정도는 아니지만, 시장 금리가 높아지면 저소득 차주들을 중심으로 부실 위험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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