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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860) 다나와 - (1) 회사소개 & 기업 스토리

danawa

  • 2000년에 설립되었으며 2011년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에 주식을 상장함. 컴퓨터주요부품 가격비교로 시작해 현재는 전 카테고리를 망라하는 종합 가격비교사이트로 최저가 뿐 아니라 전문적이고 다양한 쇼핑정보 제공.
  • 가격비교서비스와 컴퓨터전문 마켓플레이스인 샵다나와서비스를 근간으로 한 거래연계수수료와 온라인사이트를 통한 광고수익 등을 주사업으로 영위함.
  • 연결대상 종속회사는 컴퓨터조달사업을 영위하는 다나와컴퓨터를 포함하여 2개사임.

 

회사소개

기업정보

다나와는 가격비교를 중심으로 다양한 콘텐츠와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양질의 쇼핑정보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양질의 쇼핑정보를 제공하여 소비자의 구매결정을 돕고, 다양한 커뮤니티를 통해 소비자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정보와 토론의 장을 형성하게 하며 알찬 쇼핑 콘텐츠와 서비스로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것이야말로 가격비교 사이트의 본질입니다. 이러한 온라인 쇼핑의 관문이자 첫걸음이 되기 위해 다나와는 모든 핵심역량을 고객만족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CEO인사말

여러분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코로나19로 유독 힘들고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코로나를 완전히 물리치는 시간이 빨리 오기를 기다립니다. 

새로운 각오를 다지면서 사업과 관련된 유통시장의 변화와 다나와의 역할에 대하여 주의 깊게 돌아봅니다.

지난해 온라인 마켓은 비약적 성장을 이뤘습니다. 그 앞단에는 소비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쇼핑하러 외출하기보다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더 늘었습니다.
배송 속도가 중요해지고, 제품의 정보와 쇼핑 후기는 더 많이 찾아봅니다.
소비자는 이제 비싼 가전제품을 살 때도 온라인으로 먼저 정보를 찾아보며 고민합니다. 코로나19가
증폭시킨 비대면 활동이 발 품 쇼핑의 시대를 접고 손 품의 시대를 앞당겼습니다.

지난 20년간 소비자의 합리적 쇼핑을 도와 왔던 다나와의 역할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소비자에게 최저가를 알려주는 채널에서 확장하여 쇼핑 전반의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국민 쇼핑가이드 역할이 커졌습니다. 국내 최고의 가격비교라는 핵심역량은 지키면서
소비자 눈높이에 맞는 콘텐츠가 늘어나고, 그것들은 ‘다나와답게’ 세밀하고 정확해지고 있습니다.

올해 다나와는 더 막강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한편, 소비자에게 필요한 쇼핑 정보를
더 잘 보여주도록 사용성도 더욱 높이려 합니다. 제품 리뷰와 소비자 의견을 다 보고싶어 하는
소비자도, 더 경제적인 쇼핑을 원하는 소비자도 다나와만 보면 만족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겠습니다.
그것을 위하여 다나와는 올해 두 가지의 중점 과제를 설정합니다.

첫째로 ‘더 정확한 다나와’가 되겠습니다. 가격비교의 기본은 신뢰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정보와 서비스의 정확도입니다. 다양한 할인 정보,
실제 판매 가격, 제품의 세밀한 정보까지 다나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정확하고
세심한 서비스를 제공하겠습니다.

둘째로 ‘더 친절한 다나와’가 되겠습니다. 어린이부터 중 장년까지 누구나 합리적 쇼핑을 할 수 있도록
사용성을 높이고 소비자 접점을 확대하겠습니다. 다나와의 광대한 쇼핑정보를 잘 이용할 수 있도록
폭넓은 구매 가이드를 마련하고, 검증된 제품을 선별해 놓은 쇼핑 콘텐츠를 확대하겠습니다.
부품 조합이 필요한 커스텀 PC처럼 익숙지 않은 품목은 상담채널과 커뮤니티를 통해 편안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상시 지원하겠습니다.

창업 후 20년이 지나 21년차가 된 다나와입니다. 여러분의 많은 이용과 도움으로 회사가 이토록 성장했습니다. 이에 안주하지 않고 안팎으로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다나와는 엄격하면서도 창의적인 경영관리를 통해 내실을 다지고, 소비자의 ‘가치쇼핑’을 구현하기 위하여 더 높은 차원의 고객지향 서비스에 집중할 것을 약속 드립니다.

언제나 좋은 일만 있으시기 바라며, 이루고자 하는 모든 일들 성취하시길 기원합니다
가치쇼핑의 시작, 다나와입니다.

 

경영이념

행복쇼핑의 시작! 다나와

고객이 가장 행복한 쇼핑 포털 사이트입니다. 미래의 쇼핑을 이끌어 갈 다나와가 되겠습니다.

 

윤리경영

다나와는 구성원간의 화합을 바탕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여
주주, 고객, 임직원, 사업 파트너로부터 신뢰받는 기업, 존경받는 기업, 사랑받는 기업으로 영속하기 위하여 윤리경영선언문을 제정하고 이를 모든 경영활동에서 임직원의 행동과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실천한다.

 

사업영역

 

서비스소개

다양한 서비스를 통한 경쟁력 강화로 종합쇼핑포털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찾아오시는 길

 

조직도

 

다나와 '다나와살법' 편 다나와&장삐쭈 크리에이터 콜라보레이션

[장삐쭈 단편선] 아이디어 회의2

youtu.be/2-7w-SRHQa4

 

다나와 광고 쇼핑블록버스터편

다나와 라디오광고

youtu.be/8XsTPP0urbk

 

홍보채널

 

기업 스토리

다나와는 어떻게 오늘의 '다나와'가 되었나

다나와가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지금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종합 가격비교 서비스 기업으로 자리 잡았지만 첫 발을 내딛던 2000년에는 PC부품 가격비교가 주사업 모델이었다. 당시 소비자는 용산전자상가에서 직접 발품을 팔아야 PC 부품 가격을 알 수 있었던 터라 다나와의 꼼꼼한 가격 정보는 획기적이었다. 인터넷의 영향으로 소비자의 발길은 크게 줄었지만 지금도 용산전자상가는 다나와의 다양한 서비스와 연계되어 동반성장과 상생협력의 길을 걷고 있으며, 여전히 우리나라 PC 시장을 대표하는 집단 상가로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다나와 창립 20주년을 맞아 다나와의 성장과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국내 최대의 전기/전자/컴퓨터 제품의 중심지 ‘용산전자상가’의 역사와 추억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서울의 중심지에 위치한 용산전자상가의 탄생

<출처 : 서울특별시>

용산에 전자상가가 생기기 전 전자제품 시장을 이끈 곳은 청계천 세운상가, 대림상가였다. 이곳은 1960년대 미군부대에서 빼 내온 각종 고물을 고쳐서 팔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전제품을 포함한 각종 전자제품을 취급하는 상가가 모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8비트 개인용 컴퓨터가 처음 보급되기 시작할 무렵 세운상가는 PC를 구매하려는 이들로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며, 당시 애플컴퓨터 호환 PC가 주로 유통되는 곳이기도 했다.

<출처 : 다나와 회원 제공>

1980년대 들어 세계적으로 전자제품 산업이 급성장함에 따라 정부는 전자산업 육성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으며, 1987년 청계천 세운상가와 대림상가를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우리나라 최대, 그리고 동북아 최대의 집단 전자상가가 탄생하게 되었다.

 

▲ 1962년 4월 용산 청과시장 전경

<출처 : 서울특별시>

한강에 인접한 용산은 오래 전부터 전국의 물자가 모이고, 또 전국으로 나가는 관문 역할을 해 온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이런 이유로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국내 물류의 중심에 있었다. 1960년대부터 1983년까지 현재의 용산전자상가 일대는 청과물 시장이었으며, 때마침 가락동에 농수산물 도매시장이 조성됨에 따라 용산 청과물 시장은 가락동으로 이전하고 첨단 기술로 모인 전기/전자/컴퓨터 제품의 중심지로 탈바꿈하게 된다.

4,000여개 점포가 모여 있는 최대 집단상가

 

▲ 용산전자상가 배치도

이렇게 형성된 우리나라 전자제품의 유통지 ‘용산전자상가’는 나진상가, 선인상가, 원효상가, 전자랜드, 전자타운 등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상가가 모여 국내 최대 상가를 형성하고 있다. 

▲ 다나와 서비스가 나오기 전에는 발품을 팔아가며 가게마다 가격을 물어보고 구매해야 했다. 

▲ 가게마다 돌아다니며 사진과 같이 견적을 받고, 가격을 비교하고 PC를 구매하던 시절이 있었다. 

인터넷 쇼핑몰의 영향으로 용산전자상가 전체가 크게 쇠퇴했지만 그래도 PC를 구매하기 위해 여전히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은 선인상가(21동,22동)이다. 사람들의 왕래가 가장 많은 2층은 컴퓨터 부품 가게 및 PC조립 업체들이 모여 있다. 과거 게임기 및 완제품PC 업체가 있던 1층도 지금은 노트북 또는 조립PC 업체들이 자리잡고 있다.

▲ 선인상가 전경

선인상가는 건물 3개가 삼각형으로 붙어있는 독특한 형태로, 처음 방문하는 이들이라면 길을 잃기 쉬워 미궁으로 불리기도 한다. 농협 쪽에서 선인상가로 들어가면 만날 수 있는 21동 2층 ‘북간도’도 지금은 많이 쇠퇴했지만 추억이 남아 있는 공간이다. 상가 내 막다른 구석에 있어 입지가 매우 좋지 않은 곳이지만 이런 이유 때문인지 중고전문매장이 모여 있다. 몇몇 점포에는 수리 장인도 있어 정식 서비스센터에서 해결하지 못한 메인보드나 그래픽카드 수리는 물론이고, 부러진 CPU 핀도 부활시킬 수 있는 곳이었다. 신용산역에서 선인상가로 이어지는 굴다리는 불법복제 CD 및 DVD를 판매하는 곳으로 유명했지만 이 또한 인터넷의 영향으로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 용산견의 생전 모습

용산전자상가하면 떠오르는 추억 중 하나는 ‘땡비’로 불리던 용산견이다. 공CD 담는 통을 밥그릇 삼아 용산 상인들이 밥을 주며 키우다시피 했다. 신용산역과 선인상가로 연결되는 굴다리 부근에서 주로 서식했다. 당시 굴다리 들어가기 전 용산견을 쓰다듬거나 먹이를 주면 바가지를 당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18살 되던 2003년에는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되어 주변 용산 상인들이 돈을 모아 동물병원에 입원 및 치료하였으나 안락사되었다.

▲ 나진상가 11동에서 내려다 본 용산전자상가 전경. 앞에 있는 사거리를 흔히 국민은행 사거리로 불렀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나진상가는 선인상가 건너편 19동과 20동을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10동부터 20동까지 가리키는 매우 큰 상가이다. 10~15동은 주로 조명기기를 취급하고 있으며, 곳곳에 콘솔게임기 및 소프트, 배터리, 전기관련 자재 등을 판매하고 있다. 우리가 국민은행 건물로 알고 있는 전자월드는 14동이며, 16동은 농협이 쓰고 있다. 전자월드 지하에는 세미나실이 있어 제품 발표와 같은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다. 특히 1990년대에는 용산전자상가 내에 다수의 사람들이 모여 행사를 할 수 있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신제품 발표, 체험 등의 행사를 위한 단골 장소로 많이 애용되었다. 

▲ PC관련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전자랜드 내 랜드시네마 입구 

이후에는 전자랜드 내 랜드시네마(현재는 롯데시네마)에서도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었다.

▲ 터미널 전자상가 전경

▲ 용산역과 터미널 상가를 이어주던 구름다리

지금은 호텔이 들어선 터미널상가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추억의 공간이 되었다. 용산역에서 용산전자상가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구름다리’로 부르는 고가다리를 건너야 했으며, 구름다리 끝이 터미널 상가이다 보니 용산전자상가 중에서 가장 사람이 붐비는 길목이었다. 

▲ 터미널상가 내 3층 전철 개찰구 앞

실제로 터미널 상가 3층에는 용산 전철역 개찰구가 있었다. 사실 이곳은 처음부터 전자상가는 아니었다. 이 건물의 정식 명칭은 용산관광버스터미널로, 관광버스를 이용하기 위한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개장 초기에는 1층에 버스승강장이 있었으며, 5층에는 관광회사 사무실, 2층에는 관광안내센터 등이 운영되었다. 하지만 버스터미널로 제 역할을 못하게 되자 빈 자리에는 전자제품 및 컴퓨터 관련 상점이 입주하기 시작했으며, 4층과 5층에는 유명 IT기업의 용산사무소 또는 서비스센터 등이 자리 잡았다. 용산역과 이어지는 황금 상권을 형성한 탓에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이용했지만 일부 악덕 상인에 대한 경험이 쌓이고, ‘손님, 맞을래요’ 사건이 이곳에서 터지면서 소비자는 이곳에서 물건 구매하는 것을 꺼려했다. 2013년에 영업을 중단, 2014년에 건물은 철거되었으며, 지금은 6성급 호텔이 영업 중이다. 용산역에서 이어지는 구름다리는 여전이 남아 있다.

▲ 13동 두꺼비상가 입구 

이 밖에 콘솔게임기와 게임 타이틀, PC 소프트웨어 등을 파는 두꺼비상가 및 도깨비상가가 있다. 나진상가 17동 뒤쪽 한신전자타운은 외진 곳에 위치한 탓에 임대료가 저렴했으며, 그 때문인지 다나와 최저가보다 더 싼 물건도 가끔 나오기도 했다. 용산전자상가에 자주 가봤다는 이들도 생소하게 느껴지는 원효상가(4~9동)은 노래방 기기와 같은 업소용 기기를 주로 취급한다.

중고시장, 벼룩시장의 활성화

PC부품만큼 제품 사이클이 빨리 바뀌는 제품도 드물다. 업그레이드를 하고 나면 쉽게 버려지는 부품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재활용할 수 있는 소중한 물건이기도 하다.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용산전자상가에는 자연스럽게 중고물품을 취급하는 중고시장 혹은 벼룩시장이 형상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한산한 용산전자상가 분위기를 반영하듯 중고 부품시장도 없어지거나 크게 축소되었지만 당시 분위기를 생각하면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 나진상가 19동과 20동 사이에 열리던 벼룩시장

용산전자상가 내 대표적인 벼룩시장은 나진상가 19동과 20동 사이에 위치한 ‘벼룩시장 광장’이다. 방문객이 많은 주말인 토요일에 큰 규모로 열렸으며, 평일에는 인근 상가에서 내놓은 제품들이 주로 거래가 되었다. 한 물 간 중고부품은 물론이고, 일부 신상품 등 워낙 다양한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어 부담없이 둘러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앞서 설명한 선인상가 북간도도 평일 중고부품을 구매할 수 있는 곳으로 인기가 높았다.

▲ 토요일마다 인산인해를 이뤘던 선인상가 앞 벼룩시장

주말 용산에서 뜨거운 활기를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명소는 선인상가 앞 벼룩시장.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선인상가에 입장하기 전에 둘러볼 수 있는 곳으로 주목을 받았다.

용산전자상가의 부흥과 쇠퇴

동북아 최고의 전자제품 유통 메카로 불리던 용산전자상가. PC 한 대에 200~300만원에 이르고, PC 시장이 급성장할 무렵인 1990년대를 시작으로 용산전자상가는 최고의 황금기를 맞았다. 하지만 인터넷 쇼핑과 같은 환경 변화로 인해 지금은 상권이 침체된 분위기이다. 용산전자상가의 매장수는 총 4000여개에 이르지만 서울시의 발표에 따르면 2017년에는 공실률이 약 20%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한 해 1300만명이 방문한 곳이지만 지금은 주말에도 과거의 활발한 분위기는 찾을 수 없다. 1990년대 연간 10조원에 이르던 매출 규모도 지금은 절반 정도로 감소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거슬러 보면 IMF 구제금융 이후 용산전자상가는 한 차례 진통을 겪었다. 컴퓨터 및 전자제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일단 용산에 가야 한다는 공식이 깨지기 시작한 것. 1998년 프라임산업이 강변역 인근에 테크노마트를 세우면서 서울 동부권 및 경기 지역의 소비자는 더 이상 용산까지 먼 발걸음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용산과 가격 차이도 크지 않고, 나진상가나 선인상가와 비교하면 마치 백화점처럼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으며, 극장 등 문화공간과 다양한 식당까지 함께 갖춰졌기 때문이다. 또한 하이마트와 전자랜드와 같은 전자제품 전문 양판점이 서울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 생기면서 용산으로 집중되었던 전자제품 상권은 광역화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서서히 용산전자상가의 쇠퇴는 시작했다.

2000년대 전자상거래 시장이 열리면서 이제는 회복하기 힘든 침체기를 맞았다. 인터넷 쇼핑몰의 등장으로 소비자는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손쉽게 싼 가격에 다양한 제품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나와와 같은 가격비교 사이트를 통해 쉽게 제품과 가격을 비교하고, 원하는 제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로 북적이던 전자상가의 모습은 사라졌다.

감추고 싶은 추억… ‘호갱’과 ‘용팔이’

전자제품의 폭발적 성장과 PC의 대중화로 1990년대 이후 용산전자상가에 입점한 상가는 대부분 탄탄대로의 길을 걸으며 매출을 키웠다. 하지만 경쟁이 심해지고, 인터넷 쇼핑몰로 인해 매출이 점차 감소하면서 어두운 민낯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일부 상가 직원의 불친절은 도를 넘어 사기 판매 행위까지 나타난 것이다. 진열품이나 중고를 새 상품으로 속이는가 하면 당연히 포함된 부속품을 별매품으로 둔갑시켜 돈을 더 받아내는 행위가 인터넷을 통해 공유되기 시작했다. 용산의 악덕 상인을 칭하는 ‘용팔이’라는 말도 이 때 나오게 되었으며, 소비자와 상인 사이 신뢰에 금이 가면서 급기야 2007년, 2008년에는 KBS와 MBC에서 각각 이와 관련된 일이 보도가 되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았다.

▲ ‘손님, 맞을래요’로 크게 이슈가 되었던 KBS 취재 화면

극히 일부이기는 하나 강매, 그리고 협박도 커다란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고객을 상대로 바가지 상술을 넘어서 폭언까지 일삼아 용산전자상가에 대한 신뢰는 급추락했다. 한 상점을 방문해 제품에 대해 이것 저것 물어보던 고객이 망설이자 가격이 고무줄처럼 내려가는가 하면, 조금 더 생각해보겠다고 하니 피해 운운하며 협박까지 일삼았다. 그 유명한 “손님, 맞을래요?”라는 말도 KBS 취재에 의해 전파를 타고 전국에 방송되었다. 이와 같은 사건은 당연히 용산전자상가에 대한 안좋은 인식으로 이어졌고, 이후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 쇼핑을 더욱 선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옛 활기 찾기 위해 다시금 꿈틀거리는 용산전자상가

이처럼 쇼핑에 대한 행태와 인식이 바뀌면서 손님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과거의 활기찬 모습을 더 이상 보기 어렵게 되었다. 과거에는 해가 지고 나면 퇴근하는 상가 직원들이 인근 술집에 모여 한 잔씩 걸치며 그날의 노고를 위로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조차도 많이 사라진 느낌이다.

서울시는 용산전자상가의 도시재생활성화를 위해 지난해 국공유지를 대상으로 도시재생 시범 사업지로 선정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지상 28~29층 규모의 건물 2동에 창업지원시설을 세워 기존 용산전자상가의 부족한 부분을 추가로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는 기존상가 및 산업 활성화, 신산업 육성 및 창업 지원, 상생거버넌스 구축 및 운영 등 3개 분야로, 그간 주민협의체 구성, 청년 창업플랫폼 용산전자 상상가 조성 및 도심활력증진사업 추진, 산업생태계 구축을 위한 실행전략 수립, 컴퓨터박물관 기획 전시시설 조성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또한 2017년 2월 서울형 도시재생활성화 지역으로 선정된 후 ‘디지털 메이커 시티 용산 Y-Valley’라는 주제로 2022년까지 5년 간 총사업비 200억 원을 투입, 도시재생사업을 추진 중이다.

1990년대, 그리고 2000년대 초 화려했던 용산전자상가의 옛 분위기를 당장 되살릴 수는 없겠지만 변화한 시대 흐름에 맞춰 용산전자상가도 조금씩 변화를 보여준다면 과거 30년 IT 역사를 이어 앞으로도 국내 IT 산업 및 유통을 대표하는 명소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음은 다나와 창립 20주년을 맞아 진행한 용산 90년대/2000년대 용산 사진 이벤트 응모작이다. 용산전자상가에 대한 추억을 함께 되살리기 위해 본문에 소개된 작품 외에 나머지 사진을 공유하고자 한다.

▲ 캐논 파워샷 A60으로 2004년 1월 15일 촬영

▲ 사진 하단 날짜 캡션으로 미루어 보아 1999년 12월 14일 촬영한 것으로 추정

▲ 1998년 5월 26일 후지필름 SLP1000SE로 촬영

▲ 1998년 5월 26일 후지필름 SLP1000SE로 촬영

▲ 1세대 레이싱모델로 유명했던 이가나, 임지혜씨

니콘 CoolPix L5V로 2010년 10월 15일 촬영

▲ 소니 알파 100 기종으로 2006년 10월 28일 촬영

▲ 코닥 DC210 Zoom 기종으로 1997년 1월 1일 촬영

▲ 코닥 DC210 Zoom 기종으로 1999년 11월 26일 촬영

제이씨현 고객센터 모습으로 모니터가 CRT다.

▲ 소니 알파 100 기종으로 2006년 10월 28일 촬영

▲ 소니 사이버샷으로 2000년 11월 13일 촬영

▲ 소니 사이버샷으로 2000년 11 13일 촬

80년대 말부터 조성된 용산전자상가는 90년대에 이르러 컴퓨터 유통의 메카로 성장합니다. 많은 이들이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혹은 가격정보를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며 용산을 돌아다녔고 나진상가, 선인상가 등은 주말마다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높아지는 명성만큼, 악명도 생겼습니다. 일부 판매자가 과도한 가격을 책정해 제품을 판매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한 겁니다. 이 같은 문제들은 PC통신을 통해 종종 공론화 되었고, 몇몇 업체의 주도로 PC부품 판매가격이 전산화되는 계기가 됩니다. 

▲ PC통신에 올라왔던 용산 제품 가격정보표

2000년, 다나와의 등장

다나와 창업주인 성장현 의장은 당시 항공사 전산실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동료 직원이 하이텔에서 PC부품 가격표를 찾아 정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참 불편하고 답답해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 달여 간의 시간을 들여 10여 개 업체의 상품 가격을 조사하고 가격정보를 입력해 데이터베이스화 합니다. 

서비스는 생각보다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가능성을 본 성의장은 2000년, 곧바로 회사를 퇴직하고, 퇴직금으로 중고 노트북과 에어컨을 장만해 창업합니다. 회사 이름은 ‘찾으면 뭐든지 다 나온다’라는 의미를 붙여 다나와라고 정합니다. 다나와는 그렇게 탄생하게 됩니다. 이후 대학교 학과친구인 손윤환 부회장이 합류하며, 다나와는 본격적으로 회사의 체계를 갖추게 됩니다.

 ▲ 2000년 4월, 다나와의 초창기 홈페이지 모습

너, 내 동료가 되어라

오늘날 다나와의 데이터베이스는 상당 부분 자동화 되어있지만, 초창기엔 업체가 매월 팩스로 보내주는 신상품 카탈로그를 직접 손으로 입력하며 상품정보를 등록했습니다. 팩스는 하루 종일 수신음이 울렸고 일주일에 팩스 용지를 2박스씩 소진합니다. 인력이 부족해지자 성의장은 본격적으로 직원을 늘리기 시작합니다. 다나와 게시판에서 활동하던 대학생을 찾아가 직원 1호(현재 근무 중)로 고용하고, 디자이너 등 핵심 인재를 찾아 등용합니다. 절차 보다는 뜻과 지식을 우선시했다고 합니다. 

이때 입사한 다나와 초창기 직원 들은 모두 리눅스 서버 명령어를 자연스레 배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나와의 서버가 급작스런 인기로 매일 수도 없이 다운되었기 때문입니다. 월요일 되면 그냥 죽고, 화요일 되도 죽고, 수요일엔 수도 없이 죽고, 그냥 이유 없이 맨날 죽어 매번 노심초사하며 사이트를 열어봐야 했다는 악몽 같은 일화가 전해집니다. 

온라인 PC유통의 허브로 발돋움

2000년 출발한 다나와는 1년만에 누적방문자수 1000만명을 돌파하고, 2년 만에 누적방문자수 3000만명을 기록합니다. 주력은 PC부품 가격 비교였습니다. 시기가 적절했습니다. 초고속인터넷(ADSL)이 보급되며 네이버, 다모임, 디시인사이드 같은 사이트 들이 인기를 끌었고 본격적인 웹의 시대가 열립니다. 조립 컴퓨터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2년도 되지 않아 시장에는 '컴퓨터는 다나와'라는 말이 퍼져나갔습니다. 

2003년 다나와는 550여개의 PC업체를 온라인 몰로 입점시키고 매매보호시스템을 가입시켜 온라인 중심으로의 체질 개선을 시도합니다. 이때부터 PC부품의 온라인 판매가 본격화되기 시작합니다. 다나와는 대표적 PC유통 채널로 자리잡았고, 이후 다양한 정보제공 사업을 통해 영역을 확대해 나갑니다. 

 ▲ 2003년 3월, 다나와는 초기 메타사이트 형태로 운영됐으며, 날씨나 주가 정보도 제공했다

종합 가격비교 사이트로 전환

가전과 디지털 제품에 대한 가격정보를 요구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며 다나와는 2004년 12월, 가전으로 가격비교 영역을 확대합니다.  이후 2005년에는 가격비교 범위를 전 상품으로 확대하고 종합 가격비교 사이트로 거듭납니다. 다나와는 ‘쇼핑포털’을 캐치프레이즈로 세웁니다. 단순히 가격정보 외에도 사용기, 뉴스 등 유익한 콘텐츠를 생산해 제공하기 시작합니다. 오늘날 많은 방문자가 이용하는 다나와 커뮤니티(현 DPG), 뉴스가 강화된 것이 이 시기입니다. 

 ▲ 2006년 8월, 뉴스와 커뮤니티가 공존하는 포털의 형태로 자리잡았다 

▲ 이 시기 다나와는 ‘용산맵’ 과 같은 오프라인 지도 서비스도 지원했다

가격비교 사이트, 그 이상으로 

다나와는 지속되는 성장세에 힘입어 2011년 1월, 기업공개에 성공합니다. 다나와는 이 무렵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통해 강력한 브랜드를 형성하게 됩니다. 온라인 소통범위를 넓히고 시즌 이벤트를 통해 클럽이나 캠핑장 등 오프라인 영역까지 다나와의 브랜드를 노출합니다. TV에서도 다나와 광고를 만날 수 있게 됩니다. 

▲ 장첸님 다나와 모델 시절

한편으로는 가격비교 외에도 다양한 정보제공 및 유통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자동차의 견적을 내주는 서비스인 ‘다나와 자동차’를 시작으로, 전문 유통 채널 ‘샵다나와’, 여행상품 정보 서비스인 ‘다나와 여행’을 순차적으로 오픈 합니다. 

▲ 다나와 자동차 서비스 오픈(2013)

▲ 샵다나와 오픈(2016) 

▲ 다나와 여행 오픈(2016)

창립 20주년, 오늘의 다나와

90년대 말, 온라인 마켓의 비약적 성장은 유통채널의 다원화로, 곧 정보과잉으로 이어졌습니다. 합리적 구매결정을 위한 소비자의 인지적 노력은 짧은 기간 급격히 증가하였으며, 자연스레 가격비교 사이트에 대한 수요도 높아지게 됩니다. 그렇게 20여년이 지난 지금 다나와는 전문 가격비교 업체 중 가장 높은 매출액과 트래픽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다나와는 다나와가 소비자 중심의 기업이란 말을 합니다. 소비자들이 겪는 불편함을 보고 정보를 교류하는 장으로 시작했으며, 지금까지 그 모델이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비자가 앞으로 쇼핑 시장에서 어떤 것을 원하게 될지 주목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가격비교 서비스를 넘는, 소비자의 가치비교를 목표로 차별화 된 쇼핑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다나와의 존재가치일 것입니다. 다나와의 다음 20년을 기약해 봅니다. 

[다나와 20년을 말하다]다나와 창립 20주년 기념 영상 메세지

youtu.be/7kqGU_av1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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